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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또 다른 나를 만나다

by 평행 세계 2024. 11. 30.
 

1부. 또 다른 나를 만나다

아무리 평범한 하루라지만, 오늘은 조금 이상했다. 매일 지나치던 골목길이 낯설게 느껴졌고, 회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 손가락 끝이 얼어붙는 듯한 찝찝함이 남았다. 이상한 예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유 없는 불안감이라며 고개를 저으며 애써 무시했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 걷던 거리의 풍경이 달라 보였다. 아니, 분명히 같은 거리인데 건물의 색감이나 조명의 밝기가 어딘가 어긋난 듯 느껴졌다. 스쳐 가는 사람들마저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보였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똑같은 눈동자, 똑같은 머리 스타일, 심지어 내가 오늘 입고 나온 옷과도 비슷한 느낌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니다. 그는 나와 조금 다른 '나'였다.

"혹시..."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도 나와 똑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넌... 누구야?"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야. 다른 차원의 너."

뭔가 농담 같았다. 현실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다른 차원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는 짧게 웃으며 손목시계를 보여줬다. 시계는 분명히 시간이 아닌 기이한 기호와 숫자로 가득 차 있었다. "넌 오늘 선택을 해야 해. 내가 왜 너를 만나러 왔는지 알고 싶지 않아?"

내가 선택해야 한다니... 어쩐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궁금증과 공포가 동시에 몰려왔다. 하지만 이 이상한 상황을 끝까지 확인해야겠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알고 싶어. 내가 왜 너를 만나게 됐는지."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를 따라와. 설명은 차차 하자고."

그의 뒤를 따라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이걸로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 선택이 무엇인지, 그것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된 첫 번째 선택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앞장서 걸었다. 나도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주위는 점점 익숙하지 않은 풍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분명 내가 사는 동네의 골목이어야 했는데, 길가의 가로등은 희미한 푸른빛을 내뿜었고, 벽에는 어딘가 이질적인 문양들이 빛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내가 알던 현실이 아니었다.

"여긴 어디야?" 내가 멈춰 서며 물었다. "이건 꿈인가? 아니면... 내가 미친 거야?"

그는 뒤돌아보며 천천히 말했다. "아니, 넌 미치지 않았어. 그리고 이건 꿈도 아니야. 넌 지금 너희 세계와 내 세계의 경계에 있어."

그의 말이 너무 황당했지만, 주변 풍경은 그의 말을 뒷받침하는 듯 보였다. 그는 내 표정을 읽은 듯 덧붙였다.

"지금의 네가 이해하기엔 어려울지도 몰라.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야. 내가 왜 너에게 왔는지."

그는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이건 차원 이동 장치야. 이걸로 너희 세계와 나의 세계를 연결할 수 있어."

나는 믿기지 않았지만, 그의 태도는 확신에 차 있었다. 어쨌든 돌아가기 전까진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네가 나를 만난 이유가 뭐야?"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너는 특별해. 너의 선택이 여러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리 차원은 지금 균열 위기에 처했어. 네가 도와줘야 해."

"내가?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넌 아직 모를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돼. 먼저 네가 나의 세계를 봐야 해. 그 후에 모든 게 명확해질 거야."

그는 다시 손목시계를 조작했다. 갑자기 주변 공간이 휘청거리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꿈속에서 추락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금빛으로 빛나고, 건물들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공중에 떠 있었다. 바람마저 은은한 음악 소리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느껴지는 묘한 불안감이 있었다.

"이게 네 세계야?" 내가 물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지금 이 세계는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어. 내가 온 이유는 너만이 이 균열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금빛 하늘에 검은 균열이 번지듯 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그가 내 손을 잡으며 외쳤다. "이제 너의 첫 번째 임무를 알려줄게."

내가 원치 않았던 모험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검은 균열은 점점 커지며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하늘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울음소리가 귀를 찔렀고, 땅이 흔들릴 때마다 공기가 떨리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눈앞에 펼쳐진 혼란은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기이했지만, 그가 말한 "균열"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걸 막을 수 있는데?" 나는 다급히 외쳤다.

그는 내 손을 더 꽉 잡으며 말했다. "첫 번째 단계는 너의 기억 속에 숨겨진 조각을 찾아야 해. 너는 이 균열과 연결돼 있어. 하지만 네 기억이 잠겨 있어서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거야."

"내 기억?"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난 이 세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럴 리 없지. 너는 다른 차원에서도 특별한 존재야." 그는 조용히 시계를 조작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잠긴 기억을 열 방법을 찾을 거야. 준비해."

그가 시계를 조작하자마자 내 머릿속이 갑자기 뒤집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빛으로 휩싸였고,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의 나, 낯익은 얼굴들, 그리고 내가 본 적 없는 이상한 풍경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했던 장면은 거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이었다. 거울 속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건 네가 잃어버린 한 조각이야." 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장면 속 네가 쥐고 있던 것은 너의 열쇠야. 네가 균열을 막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각이지."

나는 내 머릿속에서 스쳐 간 장면을 되짚었다. 거울 속 나는 손에 작은 펜던트를 들고 있었다. 그건 내가 어릴 적 한 번 본 적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 펜던트를 찾아야 해." 그가 말했다. "그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야. 네가 기억을 되찾고 균열을 막기 위한 연결고리야."

"하지만 그건 내 차원에 있어."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난 그걸 어릴 때 잃어버렸어."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그래서 네가 돌아가야 해. 하지만 시간을 낭비하면 안 돼. 균열은 점점 커지고 있어."

그의 시계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고, 주변의 공간이 또 한 번 흔들렸다. 나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건 단순히 나의 문제가 아니야.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야."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면, 나는 그 펜던트를 찾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물건을 찾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열쇠라면,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맞닥뜨릴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