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나는 익숙한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다. 차가운 공기와 스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현실로 돌아왔음을 알렸다. 방금까지의 일이 꿈같이 느껴졌지만, 손에 남은 희미한 따뜻함은 그가 나를 붙잡았던 순간의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펜던트라..." 나는 중얼거렸다. 어릴 적 한 번 본 적 있는 그 물건이 머릿속에서 어른거렸다. 그것은 작고 단순한 펜던트였지만, 어딘가 기묘한 느낌을 주는 물건이었다.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사라졌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혹시 어릴 적 사진이나 물건 중에 힌트가 있을지도 몰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서랍과 상자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먼지에 덮인 상자 하나를 열었을 때, 한 장의 사진이 나왔다. 사진 속 나는 어린아이였고, 목에 분명 그 펜던트를 걸고 있었다.
"이거다!" 나는 사진을 손에 들고 주먹을 꽉 쥐었다. 사진 뒷면에는 "2002년 여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해 여름, 가족과 함께 갔던 시골 할머니 댁이 떠올랐다. 펜던트는 분명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할머니 댁은 이미 오래전에 팔렸고,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나는 모든 걸 걸고 그 집을 찾아가 보기로 결심했다.
몇 시간 후, 나는 그 오래된 집 앞에 서 있었다. 집은 많이 변해 있었다. 벽은 새로 칠해졌고, 마당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한 중년 여성이 나왔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나는 잠시 말을 망설였지만 곧 솔직하게 설명했다. "저기... 실례합니다. 제가 어릴 때 이 집에 살았었는데요. 혹시 예전 물건이나 상자를 발견하신 적 있으신가요? 정말 중요한 물건을 찾고 있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예전에 지하실에서 몇 가지 오래된 물건들을 발견한 적은 있어요. 특별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두었는데..."
그녀는 친절하게도 나를 집 안으로 들였다. 나는 지하실로 내려가 오래된 상자들을 살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이 커졌지만, 마침내 상자 하나에서 펜던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희미하게 빛나는 금속 펜던트는 여전히 그 기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거다..." 나는 낮게 속삭였다. 손에 쥔 펜던트는 차갑지만, 어딘가 따뜻한 느낌도 동시에 들었다.
그 순간, 공기가 떨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방 안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균열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이번엔 내가 그 균열 속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다시 그 세계였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안도감이 가득했다.
"펜던트를 찾았구나." 그는 말했다. "이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거야."
나는 펜던트를 바라보며 속으로 결심했다. 이제 물러날 수 없었다. 내가 이 세계를, 아니, 여러 세계를 구할 열쇠를 쥐고 있었으니까.
펜던트를 손에 쥔 순간, 그의 말이 떠올랐다. "이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야." 그 말처럼 펜던트는 묘한 기운을 뿜어냈다. 표면에는 내가 본 적 없는 기호들이 희미하게 빛났고, 손가락으로 만질 때마다 따뜻한 에너지가 손끝으로 전해졌다.
"이제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지?" 나는 그를 향해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펜던트는 네 기억과 연결돼 있어. 그것을 통해 네가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야 해. 그 조각들이 네 안의 힘을 깨울 열쇠가 될 거야."
"내 안의 힘?" 나는 당황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야."
그는 잠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평범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네가 평범했다면 내가 너를 만나러 오지 않았을 거야. 네가 균열을 막을 유일한 존재라는 걸 곧 알게 될 거야."
그의 말은 여전히 믿기 힘들었지만, 펜던트가 가진 힘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나를 데려온 이 세계도, 내가 본 균열도 모두 현실이었으니까.
그는 나를 높은 언덕으로 데려갔다. 언덕 아래에는 균열이 생긴 중심지가 보였다. 그곳은 희뿌연 안개 속에서 검은 균열이 퍼지고 있었고, 주변의 모든 것이 왜곡된 듯 보였다. 건물들은 기울어져 있었고,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균열은 점점 확장되고 있어." 그는 균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이곳에서 첫 번째 기억의 조각을 찾아야 해."
"그게 뭔데?" 나는 물었다.
"너 자신과 가장 깊게 연결된 기억. 펜던트가 그걸 찾는 데 도움을 줄 거야. 하지만 조심해야 해. 균열 속에는 위험한 것들이 있어."
나는 그의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펜던트를 꼭 쥐고 균열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균열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머릿속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균열은 마치 나를 향해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펜던트를 손에 들고 눈을 감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머릿속에 이상한 영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내가 누군가와 함께 웃고 있었다. 그 사람은 얼굴이 흐릿해 알아볼 수 없었지만, 묘한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 사람의 손에는 펜던트와 같은 모양의 또 다른 물건이 들려 있었다.
갑자기 내 주변으로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균열에서 나온 것인지 형태가 불분명했지만,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이게 뭐야! 어떻게 해야 해?"
그가 멀리서 외쳤다. "펜던트를 사용해! 네 안의 기억을 불러내면 그들을 막을 수 있어!"
나는 펜던트를 힘껏 쥐었다. 이상하게도 내 손에서 따뜻한 빛이 퍼지며 그림자들을 몰아냈다. 펜던트는 내 기억을 열어줄 뿐 아니라, 균열에서 나오는 어둠을 막아주는 방패와도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펜던트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잃어버린 과거와 연결된 열쇠이자,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막기 위한 도구였다. 균열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찾을수록, 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일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준비됐어."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다음 단계로 가보자."
그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펜던트의 빛은 그림자들을 몰아내며 균열 주위를 잠시나마 안정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하늘엔 검은 균열이 퍼지고 있었고, 주변은 섬뜩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균열 안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해." 그가 다가와 말했다. "첫 번째 조각은 균열의 중심에 있어. 네가 직접 찾아야 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균열 속으로 들어간다는 건 그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나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펜던트를 믿어." 그는 마지막으로 내게 조언했다. "네가 가진 모든 질문에 답을 줄 거야."
균열 속으로 들어서자마자 모든 것이 뒤틀렸다. 땅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고, 주위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균열은 내 발밑에서 뒤틀리며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펜던트가 희미하게 빛나며 나를 안내했다.
빛은 나를 어디론가 이끌었다. 그 끝에는 또 하나의 장면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내가 누군가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상대는 또 다른 나였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달리 강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딘가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건 또 무슨 장면이야?" 나는 중얼거렸다.
펜던트는 밝게 빛났고, 내 앞에 서 있던 또 다른 내가 입을 열었다.
"드디어 왔군. 너는 정말 답답할 정도로 느리구나." 그는 나를 비웃듯 말했다. "네가 정말 이 균열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넌 누구야?" 나는 긴장하며 물었다. "왜 나와 똑같이 생긴 거지?"
그는 미소를 지었다. "나? 나는 네 안의 또 다른 너야. 네가 부정하려고 했던 선택들, 네가 외면했던 감정들. 나는 그 모든 것의 결과물이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균열은 더 크게 뒤틀렸고, 균열 속에서 검은 손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나를 잡아채려는 듯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이게 너의 첫 번째 시험이야."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네가 정말 강해지고 싶다면, 나를 이겨봐."
나는 그와 대치하며 펜던트를 꼭 쥐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희미한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펜던트가 단순히 과거의 기억만을 불러오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선택과 감정을 반영하는 무언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너를 이길 필요는 없어."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왜냐하면 너도 결국 나니까."
그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미소를 되찾았다. "그렇다면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겠어?"
"그렇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네가 나의 일부라면, 이제부터는 함께 해야겠지."
그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펜던트가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어둠을 걷어냈다. 균열은 잠시 잦아들었고, 그의 모습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
"축하해. 첫 번째 조각을 찾았군. 하지만 앞으로의 길은 더 험난할 거야."
눈을 떴을 때, 그는 내 앞에 서 있었다. "네가 해냈군." 그는 안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첫 번째 조각은 완성됐어. 앞으로 남은 건 두 번째 기억의 단서를 찾는 거야."
나는 펜던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하겠어. 이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니까."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 다음 단계로 가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균열의 중심에서 나의 과거와 마주하며, 나를 완성해가는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