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의 어둠 속에서 첫 번째 기억의 조각을 찾은 나는, 단순히 하나의 열쇠를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에 숨겨진 두려움과 용기의 실체였다. 펜던트를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앞으로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두 번째 기억은 더 복잡한 장소에 숨겨져 있어." 그는 균열을 응시하며 말했다. "첫 번째는 단지 서막에 불과했지."
"더 복잡하다니, 대체 무슨 의미야?" 나는 물었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는데, 벌써 벅찬데 말이야."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부터 균열은 더 강력하게 반응할 거야. 균열은 단순한 공간의 틈이 아니야. 네가 외면했던 것들,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이 네 앞에 실체로 나타날 거야."
그는 손목의 시계를 조작해 새로운 좌표를 설정했다. 곧, 발밑에 있는 땅이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전에도 겪었던 차원 이동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공기가 무겁고 날카로웠다. 마치 나를 거부하는 공간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눈을 뜨니 우리는 폐허처럼 보이는 공간에 서 있었다. 빛 한 줄기 없는 어둠 속에서 붉은색 섬광이 간헐적으로 번쩍였다. 바닥은 거대한 균열로 갈라져 있었고, 균열 사이로 차가운 안개가 스며 나왔다.
"여긴 어디야?" 나는 낮게 속삭였다.
"이곳은 네가 잊고 싶어 했던 기억들이 응축된 곳이야." 그가 대답했다. "두 번째 조각은 네가 가장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했던 순간에 묶여 있어."
그의 말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분명 내가 외면하려 했던 과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이 흐릿하고 모호했다. 펜던트를 바라보니, 그것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나를 앞으로 이끌려는 듯.
나는 천천히 균열 사이를 걸어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균열 안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것은 내 이름을 부르며 날 비웃는 듯한 목소리였다.
"들리니?" 그는 내 뒤에서 말했다. "그건 네가 감춰둔 목소리야. 균열은 네 과거를 왜곡해 너를 시험하려 들 거야."
그 순간, 앞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그곳으로 다가가자,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어릴 적의 나였다. 내가 한 손에 펜던트를 들고 웃고 있었지만, 표정은 서서히 흐려지며 공허해졌다.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어?" 나는 어린 나를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건 네가 스스로 알게 될 거야."
갑자기 어린 나의 모습은 흩어지더니, 균열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형체가 불분명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압도적인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림자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도망칠 수 없어." 그는 균열 끝에서 소리쳤다. "펜던트를 사용해! 네가 과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나는 펜던트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에서 따뜻한 빛이 번져나가며 내 몸을 감쌌다. 그림자는 한순간 움찔했지만, 곧 다시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펜던트에 집중하며 과거의 기억을 끌어내려 했다. 머릿속에서 숨겨졌던 장면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기억 속에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갈등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너무나도 냉정한 말을 내뱉었고, 그 사람은 등을 돌려 떠나버렸다. 그 순간부터 나는 후회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었다.
펜던트는 강렬히 빛나기 시작했다. 빛은 균열을 가르고 그림자를 삼켜버렸다. 균열 속에서 작은 물체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것은 오래된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이게 두 번째 기억의 조각인가?" 나는 사진을 들고 물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과거를 받아들였어.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된 거야."
나는 사진을 펜던트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것은 나의 일부가 되어 다시 빛을 발했다. 이 과정이 계속될수록, 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남은 여정이 얼마나 더 험난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펜던트에 두 번째 기억의 조각을 담은 후, 나는 그가 말했던 ‘험난한 여정’이 무엇인지 점점 실감하기 시작했다. 균열은 단순히 어둠과 왜곡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내면의 갈등을 그대로 드러내는 무대였다. 그리고 균열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내가 잊고 싶었던 모든 것을 마주해야만 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해?"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없이 손목의 기계를 조작했다. 새로운 차원의 좌표가 설정되자, 발밑의 땅이 다시 한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균열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은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불쾌했다.
눈을 뜨니, 우리는 또 다른 장소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평범한 도시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하늘은 너무 맑았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모두 표정이 없었다.
"여기는 또 무슨 곳이야?" 나는 경계하며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여기는 너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야. 네가 과거에 내렸던 모든 선택이 결과로 나타난 곳이지."
거리를 걸으며 나는 낯선 동시에 익숙한 풍경에 당황했다. 건물과 거리의 구조는 내가 살던 도시와 비슷했지만, 세부적으로는 완전히 달랐다. 익숙했던 카페가 서점으로 변해 있었고, 내가 자주 다니던 골목길에는 이상한 표지판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기계처럼 정해진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아무도 서로를 보지 않았고, 대화도 없었다. 그저 반복적인 동작만 할 뿐이었다.
"왜 사람들이 이러는 거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 사람들이 모두 뭔가에 갇혀 있는 것 같아."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건 네 선택 때문이야. 네가 과거에 외면했던 감정과 결정들이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친 거지. 이 세계의 사람들은 그 결과에 갇혀버린 거야."
그의 말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선택에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중요한 순간에 결정을 내리지 못해 기회를 놓쳤던 적도 많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내 자신을 탓하며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펜던트가 다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빛은 나를 좁은 골목길로 이끌었다. 그곳은 내가 자주 피하던 공간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골목은 항상 나에게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골목 끝에는 또 다른 내가 서 있었다. 이번에는 내 나이와 비슷해 보였다. 그는 내게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천천히 몸을 돌렸다.
"또 나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를 거야. 나는 네가 두려워하던 선택들을 대표하는 존재야."
"선택?"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는 손을 들어 주변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모든 건 네가 도망쳤던 순간들이 만들어낸 세계야. 너는 항상 선택을 미뤘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지. 그 결과가 바로 이곳이야. 네가 행동하지 않은 선택들로 이루어진 도시."
그의 말이 끝나자 주변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늘이 어두워지며 거리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점점 모여 하나의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형태가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속삭였다.
"넌 실패했어. 넌 항상 도망쳤어.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검은 형상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은 마치 나의 목을 죄려는 듯 다가왔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러나 펜던트는 다시 한번 강렬하게 빛나며 내 손을 감싸기 시작했다.
"선택은 너의 몫이야!" 그가 멀리서 외쳤다. "도망칠 건지, 맞설 건지 결정해야 해!"
나는 펜던트를 움켜쥐고 심호흡을 했다. 지금까지 나는 내린 선택들을 후회하며 도망치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야 했다. 내가 이 형상을 마주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여정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어!" 나는 펜던트를 높이 들며 외쳤다. "나는 계속 싸울 거야.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펜던트가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검은 형상을 밀어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작고 반짝이는 물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금빛으로 빛나는 열쇠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며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세 번째 조각을 찾았군." 그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네가 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어.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선택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열쇠는 내가 다시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증거였다.
세 번째 기억의 조각을 손에 쥔 순간, 나는 점점 더 많은 질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매번 새로운 차원을 지나면서 깨닫는 것은 하나였다. 나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들을 모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균열 속의 여정은 내가 내린 선택들을 되돌아보고, 그 선택들에 대해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세 번째 조각을 찾았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야."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정한 시험은 이제부터야."
내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이번에는 정말 다른 공간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광활한 미로처럼 보였다. 벽은 구불구불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길들 사이로 어두운 안개가 낀 채 있었다. 그곳은 마치 내가 고른 선택들이 만들어낸 미로처럼 느껴졌다.
"여기가 그럼 선택의 미로라는 거야?"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미로는 네가 겪어온 모든 결정의 결과물이다. 이제 네가 어떻게 이 미로를 빠져나갈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미로 안으로 발을 디뎠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점차 공기가 무겁고 압박감이 심해졌다. 벽에 손을 대자 차갑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떨림이 느껴졌다.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점점 더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길을 따라가면 결국 탈출할 수 있을까?" 나는 그에게 물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미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네가 내린 선택들을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 너는 그 선택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 미로가 존재하는 거야. 하지만 그 선택들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걸 인정할 때, 비로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 나는 항상 내 선택을 두려워했다.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봐 후회하며, 지나간 길을 되돌아가곤 했다. 그런 마음이 나를 이렇게 복잡한 미로로 몰아넣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내 선택이었어." 나는 자신에게 말처럼 속삭였다. "이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은 결국 내가 내 선택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 순간, 미로 속에서 희미한 빛이 비쳤다. 나는 그 빛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더 강해졌고, 나는 그것을 더 가까이,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조금씩 길이 보이는 것 같아." 나는 혼잣말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길이 열린 것 같아."
"그렇다." 그는 내 옆에서 말했다. "이제 네가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거야. 그 길은 너의 선택들이 만들었지만, 그 선택들이 너를 옳은 방향으로 인도할 거야."
우리는 계속해서 미로를 걷고, 곧 큰 공터에 도달했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문이 서 있었다. 그 문은 두꺼운 고리로 잠겨 있었고, 문 주변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새긴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문 앞에 서서 나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건 뭐지?" 나는 물었다.
"그 문은 마지막 선택을 의미한다." 그가 대답했다. "이 문을 열려면, 네가 지금까지의 선택을 모두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너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임을 믿어야 해."
나는 잠시 문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조용히 말했다. "내가 두려워했던 모든 선택들을 받아들이고, 이제 나는 이 길을 가겠다."
그 말과 함께, 문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나는 무언가 더 큰 여정의 시작을 느꼈다. 이 문이 바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문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 선택을 마친 거야?"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는 그동안 네가 두려워한 것들을 모두 넘어서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고 있어."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 안에서 따뜻한 빛이 흘러나왔다. 나는 한 걸음씩 그 빛 속으로 들어갔다. 빛 속에서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확신했다. 모든 선택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고, 이제 그 선택들을 믿고 나아갈 시간이 온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결심을 굳히며 말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바로 이 길이다."
문을 지나고 나서, 나는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였다. 그곳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끝없이 펼쳐진 가능성의 세계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